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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관 - 해적의 생활
■ 해적의 생활
해적들은 유럽으로부터 사회적인 버림받은 사람들, 아프리카의 노예들, 영국 선원들, 아메리카 인디언, 등이며 그들은 공통 언어(공유 종교)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흔히 바다의 폭군이라는 명성과 달리, 많은 해적 지휘관들은 그들의 승무원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선출이 되엇으며,그들은 그들만의 공동체에서 공동체의 행동을 통치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법을 만들었습니다.

해적들의 음식-buccan 요리
17세기 후반에 미국 연안의 스페인 식민지를 약탈한 해적을 Buccaneers 라고 부부르는데 이들은 스페인에 의해 쫓겨난 프랑스 개척민들로 스페인에 증오를 품고 히스파니올라(현대의 아이티)와 쿠바를 오가는 스페인의 연안 선박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섬을 돌아다니며 짐승을 사냥했었다. 그래서 이들은 잡은 고기를 훈제나 불에 꾸워서 먹었는데 이들을 가르켜서 'Buccaneers'라는 말은 남미 인디언 아라와크족의 말인 buccan'에서 유래했는데 이 뜻은 고기를 구울 때 사용하는 불을 뜻했다. 해적들은 섬에서 짐승을 잡아서 가죽은 모피로 팔고 고기를 훈제 또는 바비큐를 해서 먹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항해는 몹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갑작스런 폭풍우에 인한 조난, 침몰의 위험성을 시작해서 변변한 약도 없기 때문에, 선내에서의 전염성의 역병으로 여럿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영국 해군조차, 런던을 출발할 때에는, 200명정도의 승선 시켜서 출발하였는데, 카리브해에 도착했을 때에는, 극소수만 살아 남았을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그래서, 그 당시에는 상선이나 어선들의 뱃사람은 궁핍한 계급의 인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해적들도, 예외가 아니어서,허술하고 투박한 선내의 식사에서 비타민 C부족, 약의 부족으로 전투로 죽는 사람들보다, 병들어서 사망하는 케이스가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열대에서는 말라리아를 시작해 유럽인이 처음으로 만나는 위험한 병이 많아 식민지의 거주민들 중에서는 20세 이상 살아 남은 것은 천운이다라고 말해졌던 시기라고 합니다. 또 의사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잡히면 강제라도 해적 동료가 되도록 했다고 하지만,선의를 태우고 있는 해적선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 개척민이 아닌 영국 해군 출신의 해적들은 그들이 우선 해군이 되었던 이유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강제 모집에서 원인을 찾을수 있다.
강제 모집의 수법은 여러가지이다.그림과 같이 강제로 끌고 가는 경우가 있었으며,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술을 한턱 내고 부자가 되게 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걸어 그대로 배에 싣기도 했다. 강제 모집된 뱃사람들은 몰래 배에서 내려서 도망갈수 있는 위험이 있기에 항구에서의 자유 행동이 인정되지 못햇다고 한다. 19 세기가 되어서야 선장의 재량에 의해서 48시간의 상륙 허가를 줬다고 한다 그리고, 1890년부터 수병이 규율 위반을 범하지 않는 한, 무조건 3개월 마다 상륙 휴가를 주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17 세기 영국 해군에서는 선원 1 인당의 주부식으로 소금절인 돼지고기 또는 소금절인 쇠고기와 비스킷, 맥주, 콩,오트밀, 버터, 치즈등이 식사의 재료였으며,그시절로 보면 식품의 양은 문제 없었지만, 당시에 냉장고가 없어서 소금으로 방부제를 썼했기에 먹기 힘들었다고 한다.그래서 선원들에게는 식사 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시대의 선박은 선내의 아래에 가축을 키워서 신선한 고기와 알을 얻을수 있지만,그건 선장과 항해 사관 몫이라서 일반 선원들에게 가지 들어 가지 못했고,선내에서는 계급 사회라서 자유롭지 못하고 생활에 대한 처우도 너무 열악 하엿다고 합니다. 심지어 선원들이 정박중에 마음대로 상륙도 못하고, 임금도 저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 할수도 없었고,항해가 끝날 때까지는 받지 못했다고 하며, 16 ~18 세기의 카리브 해적 사회는 당시의 일반인의 사회에 비해 훨씬고 자유로워서 평등한 사회였기에 선원의 약 70%가 해적으로 돌아 섰다고 한다.

당시의 해적은 어느시대의 선원과 같이,술과 도박과 여자로.해적질을 해서 만든 돈을 다 섰다고 합니다.
해적들이 마시던 럼주는, 사탕수수를 원료로해서 증류시켜 만든 술로 서인도제도 원산 사탕수수에 당밀을 발효·증류해서 만들어 먹엇던 술로 원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8 세기에 영국 해군에서는 선박의 발달로 인해 장기 항해가 가능 하여 당시 선박에서는 식용수로서 썩지 않고 장기간 보관 할 수 있는물이 필요 했는데 그게 바로 술이었습니다. 1729년 영국 해군에서는 선원들을 위해 맥주를 보급 했는데 배급량이 하루에 1 갤런으로 되어 잇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기 항해를 하다보니, 맥주가 김이 빠지게 되어 맛이 없어서 기피 하자 포도주와 럼으로 대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해군 제독 에드워드·바논이 럼주가 너무 독하여 럼주에 물을 썪어서 럼주를 지급한후에 영국해군의 정식적인 지급품이 되엇으며,영국해군에서 해적으로 변신을 한 선원들이 자주 마셧다고 합니다.

당시의 선원들이 부두 가 까이에 있는 선술집에서 마셨던 술잔(핏치,조끼)으로 이것에 맥주나 와인을 담아서 안주로 소금을 먹엇다고 합니다. 당시의 선박은 목제였기에 화재의 위험 때문에 항해중에는 금연이었다고 합니다.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씹는 담배가 선호되었다고 합니다. 상륙한 선원들은 점토제의 파이프로 흡연을 즐겼다고 합니다.
17세기 선박에서 사용하던 트럼프 항해의 따분함을 죽이기 위해서 선내에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 해적의 생활
해적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선상에 보내야 했기에 해빛을 쬘 기회가 없었고,식수가 없어서 빨래를 하지 못해서 옷은 땀과 소금기를 머금어서 뻣뻣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카락은 뻣뻣했고,머리에 이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뻣뻣한 송이를 닮은 현대식 넥타이와 그시대에 가장 유행한 신발 신고 있었으며,옷들은 거의 해적행위의 전리품이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해적들은 앞에 단추가 달린 단단한 무명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바지의 밑단에는 각반을 채워서 움직일때 선내에서 걸리지 않도록 하였으며, 줄무늬가 그려진 양말과 귀족에게 매우 인기있는 죔쇠가 달린 가죽제품 신발을 사용했다고 합니다.그리고 셔츠는 마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줄무늬가 있는 것을 선호 하였으며,영화 속의 붉은 장식띠는 대부분 실제로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잘 보이려고 덧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넥타이는 한랭 해역을 지날때 차가운 공기에 목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 폭넓은 가죽 벨트는 신체를 가로질러 대각선으로 매달렸고 몇몇 권총들과 몸이 휜 단도를 매달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선원(해적)들의 의상과 신발


17세기 선원들이 썻던 모자 모양들
■ 해적 박물관




바하마의 수도 나소벨리즈에 있는 해적 박물관 사진으로 나소벨리즈는 자메이카에 있었던 포트로얄의 해적 본거지가 무너지자 해적들이 이곳으로 옮겨와서 해적 흑수염과 잭라캄이 연인인 안보니와의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곳 이다. 이 박물관 안에는 테마·파크와 같이 되어 있어서 해적들이 살았던 당시의 건물, 범선 등이 전시되어 있다.
■ 해적들의 천국
토투가
토투가는 현재의 하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있는 에스파뇨라섬에 있는 도시로 해적의 전성시기에는 트르트가섬으로 불리 웠던 곳입니다.이 섬은 위의 지도에서 Ile de la Tortue 라는 지명의 홀죽한 오이와 같은 형태의 섬으로 프랑스 말로 「거북이의 섬」입니다. 이 섬은 스페인령에 의해 점령이 되었지만 거의 사람이 살지 않은 무인도였는데 이섬을 발견한 스페인군이 떠나자 그들이 두고간 가축들이 야생화되어서 식료품으로 사용할 수가 있기에 이것을 안 Buccaneers 들이 그것들을 사냥해 모피와 식료로 이용할려고 많이 이주해 왔습니다. Buccaneers란,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온 자들로, 일자리가 없어서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등의 나라 허가를 받아 당시 세력을 확대하고 있던 스페인선박을 주로 덮치는 고용된 해적들이었습니다. 스페인인은 자신들의 영지에 타국의 Buccaneers가 증가해서 자신들의 선박과 식민지를 약탈 했기에 위기감을 느껴 에스파뇨라 섬의 Buccaneers들을 탄압해 내쫓으려고 하여 1630년경부터 에스파뇨라섬 근처에 있는 트르트가섬으로 옮겨 살게 되었으며 그곳을 해적들의 거점으로 하였습니다. 트르트가섬은 쿠바와 하이티의 사이에 있는 윈드워스 해협의 근처에 위치 해 있기에 자메이카의 포토 로열을 향하는 스페인선박을 노리는 장소로는 가장 좋은 곳이었기에 Buccaneers들은 트르트가섬을 근거지로 하여 요새화하고, 이후 Buccaneers,와 기타 해적들이 장사 및 오락의 집합소가 되어 번영하였습니다.이곳은 대단히 치안이 나빴기 때문에, 「세계의 해적들의 천국」이라고 불렸습니다.
바하마 포트 로얄 괴멸 이후의 해적들의 중요 거점




현재 BAHAMA의 수도인 NASSAU의 사진입니다. 바하마의 수도 Nassau는 해적의 전성 시대인 17세기말 해적들의 주둔지인 포트 로얄이 지진으로괴멸하고 나자 그 대안으로 해적들이 이동한 섬이 지역이다. 영국 해적사란 책에서 바하마의 ·뉴프로비던스 섬(New Providence Island)의 Nassau에 대해서 Nassau는 섬이여서 배가 양쪽 모두로부터 입항할 수 있고, 도주도 할 수 있어 해적들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바하마는 높은 산이 없고, 평평한 평야가 있는 섬으로 바하마란, 썰물(bajamar)이 어원으로, 많은 섬들이 얕은 바다가 일면에 퍼진 산호초가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많은 섬이 있는 바하마는 해적들에게 있어서 절호의 은둔지가 되어, 18 세기 초 해적 전성 시대에는, 난폭하게 구는 해적들의 집합소로서 해적 수도 였습니다. 유명한 해적 검은수염 에드 워드 티치는 여기를해적 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여자 해적들과 로맨스를 펄쳤던 유명한 해적 잭·라캄 선장이 여자 해적 안·보니와 만나고, 격렬한 사랑에 빠졌던 곳이 기도 합니다.
자메이카의 포트 로열(port loyal)이 있던 장소, Buccaneers·해적들의 중요 거점
최초 스페인령으로서 출발한 자메이카는, 1670년의 마드리드 조약에 의해 정식으로 영국령이 됩니다.항구도시 「포토 로열」을 수도로서 자메이카 남쪽 해안에 있는 유서 깊은 항구도시이며,한때 영국령 서인도제도에서 가장 분주한 무역 중심지였고, 방탕함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17세기말 이곳을 악명 높은 선장 헨리 모건이 본부로 삼자 해적들을 상대로 하는 상인과 장인들이 몰려들고 약탈한 금괘들이 유입되었으며, 스페인의 섬들과 배를 공격하는 해적들과 사략선의 작전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정부와 자메이카 지주들은 스페인과의 합법적 무역에서 얻을 수 있는 큰 이익과 농경을 바탕으로 한 안정된 경제에 주목하고, 핸리모건을 자메이카 총독으로 임명하여 해적질에 대한 제제를 나서게 하여 그는 죽을 때까지 총독으로서의 권한을 이용하여 자신과 가이 해적질 한 동료들을 기소했던 곳입니다.1692년에는 지진이 일어나 대부분의 해적들이 몰살했던 곳이기도 하다. 1692년의 대지진의 뒤에 자메이카의 수도는 킹스턴으로 옮겨가고 포토 로열은 재건되엇습니다.이곳 자메이카는 해적들에게 있어서는 포트 로열의 화려한 환락가와 함께, 미남의 멋쟁이 해적 선장 잭·라캄과 안 보니, 메어리 리드등의 역사가 서린곳입니다. (영국군에 잡힌 잭 라캄은 포토 로열에서 처형되었엇고 , 여자 해적들이 투옥이 되었고,찰즈·베인등 다른 많은 해적들이, 포토 로열의 개로우즈 포인트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현재 수도 킹스턴의 교외에는 해적들이 살았던 포토 로열의 유적과 ,해적 박물관이 있다.
마다가스카르섬~해적의 집합소
마다가스카르는 세계에서 그린란드, 뉴 기니, 보르네오 다음으로 네 번째로 큰 섬이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합친 것 같은 크기다. 이 나라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은 포르투갈인으로, 1500년 디에고 디아스(Diego Dias)의 지휘를 받는 함대가 도착했다. 이어지는 시기 동안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영국인이 모두 이 섬에 영구적인 근거지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17세기 한 무리의 무법자들이 정부가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귀족들은 마다가스카르 원주민, 특히 일 상트 마리 주변의 원주민들에게 전리품과 암매장한 보물들을 주었으며 원주민 여자와 결혼하기도 했다. 원주민들이 카리브해의 해적들을 거부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1000여명이 넘는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내덜란드, 미국 등의 해적들이 마다가스카르의 동해안을 기지로 삼고 있었다. 이 지역은 희망봉을 돌아오는 배를 공격하기에 아주 입지가 좋았던 것이다. 이 지역은 카리브해의 해적 바솔로 뮤·로버츠 등이 아프리카의 기니에도 원정하기전에 거주지로 삼았던 곳이고, 또 해적선장 에드워드·잉글랜드와 해적 키드가 이 지역에서 활약 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섬은 당시부터, 과일이나 작물, 식료품이 되는 동물(소, 염소, 돼지)등이 풍부하며,토지도 풍부하여 많은 해적들이 근거지로 하고 있었습니다.해적들을 아주 좋아하는 반짝반짝인 보석(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등)이나, 광물자원(금은이나 다른 광물등)도 몹시 풍부하여 유망한 개척지였던 것 같습니다. 영국군의 손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를 은둔지로 했던 해적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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