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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관 - 해적의 유래와 종류
■ 해적의 유래
해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가 않지만 지금으로 부터 3,000년전부터 해적(Pirate),해적행위(Piracy)라는 의미의 단어가 사용되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속의 해적
그리스 신화에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배를 타고 그리스의 여러 섬을 정복하기 위해 떠나다가 한섬에서 그 앞을 지나던 튀레노이(Tyrrhenoi) 족 해적이 그를 발견하고는 어딘가의 왕자라고 믿어 버려, 몸값을 하게 하기 위해서, 배에 데리고 들어갔다. 디오니소스는 해적의 선장을 찢어 죽였고 그 광경을 본 다른 선원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어 돌고래가 되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온걸로 봐서 그시대에도 해적의 존재가 있었다. 첫번째 기록은 B.C. 140년대 로마의 역사가 Polybius에 의해 처음으로 라는 단어가 등장하였고,"Piracy"는 A.D. 100년 그리스 역사가 Plutarch에 의해 언급되어졌다고 합니다. 또 영국 최초의 사전에는 항구내, 바다의 도둑 또는 약탈자라는 의미로 "Pirate"가 기록 되어졌으며, 검은 깃발에 허가없이 무장을 한 배를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또 유명한 Homer의 "오디세이"와 "일리야드"에서도 "Piracy"란 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2500 년전의 그리스의 항아리.해적에게 습격되는 상선이 그려져 있다.
그시대의 에게해에서는 전쟁과 해적 행위는 거의 같은 것을 의미했습니다. 기원 전6 세기 이후, 그리스의 도시 국가(폴리스)의 아테네가 지중해의 패자가 되면서 아테네는 교역을 지키기 위해서 해적 토벌에 나섭니다.그시대의 해적의 상당수는 그리스 주변의 미개인으로, 사냥(고대 그리스는 노예 사회였기 때문에, 인간 사냥도 보통으로 행해지고 있었음)과 어업으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시대의 해적
기원 전4 세기에 도시 국가가 분열이 되어 아테네의 해상 제국이 붕괴해 지중해는 다시 해적으로 흘러넘쳤으며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가 되어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시대는 해적이 만성화가 되어 해적은 훌륭한 직업이 었었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젊은 줄리어 시저가 해적에게 잡힌 에피소드도 있듯이 공화제 로마 말기의 동 지중해는 해적이 출몰하는 지역이였다고 합니다. 기원 전1 세기에 지중해의 해적들은 밀을 쌓은 배를 덮쳐, 로마의 집정관을 납치하였으며.로마의 주요항인 오스티아항(로마로부터 약 24킬로 거리)까지 습격되엇다고 합니다. 기원 전67 해, 원로원으로부터 해적 토벌의 임무가 주어진 폰페이우스는 500척의 갤리선과 12만명의 군사를 모아 지중해를 13의 지구에 분할해, 각각을 다른 지휘관에게 담당시키고, 한꺼번에 해적의 근거지를 공격하고 해적들을 일망타진하고 일부는 로마 함대에게 편입되었으며 일부는 농민으로써 식민지에 보내졌다고 합니다.

비잔틴 제국과 아랍 지도 (7세기-9세기경)
비잔틴 제국 시대의 해적
비잔틴 제국시대의 광대한 영토가 통일되었던 것은 수도 비잔티움(콘스탄티노풀)과 부를 낳는 지방의 마을을 연결시키고 있던 것이 해상 루트가 있었기 때문에 키리키아인등의 해적을 제압 해서 가능 한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아랍인의 침공(7 세기)이나 십자군에 의한 공격(13 세기)에 의해서, 비잔틴의 해상 왕국은 크게 요동했습니다. 성전에 몸을 던진 아랍인에 있어서는 적을 약체화 시키는 모든 수단이 정당한 것이었으며,이슬람교도가 지배한 나라들에서는 사략행위가 행행하여, 포로를 잡아 노예로 팔고 적의 약탈품을 빼았었습니다.그로인데 아랍의 사략선에 습격당한 해안에서는 인구가 감소하여졌고 포로가 된 크리스트교도를 해방하기 위해서 이슬람 제국에 몸값이 지불되었습니다. 또 설상 가상으로 이러한 상황에 이탈리아의 해안을 덮치는 해적들에게도 비잔틴 제국은 몸살을 앎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해적 행위로 인해서 베네치아나 제노바라고 하는 상업 공화국들은 번창 할 수 있엇습니다 그리 하여 지중해에서는 전통적으로 해상에 있어서의 폭력이 용인되어 왔습니다. 해적 행위와 무역과 밀무역과의 사이에 명확한 구별은 없고, 교역때의 신뢰 관계는 무너 졌으며,무역선이 스스로 경쟁 상대의 배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비잔틴 제국은 법률에 의해서 해적 행위(해상에서의 불법인 약탈)와 사략행위(전쟁의 일환으로서 제국의 상선에 대해서 군사 행동을 일으키는 것)를 명확하게 구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체체측에 유익하면 해군 손해면 해적으로 구분을 하였으며 기독교에 반대 되는 이슬람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교국가의 배를 덮치는 해적은 영웅이었고, 아니면 적이엿다고 합니다.

9 - 11세기에는 여러분들도 잘아는 스칸디나비아인(Scandinavians)들이 영토의 부족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으로 그들 제국을 확장시키려고 잉글랜드와 다른 나라들은 침략을 해서 그들을 해적이 아닌 바이킹(Vikings) 이라고 불렀지만,이들 역시 바다의 도둑인 해적하고 같은 의미라고 할수 있습니다.
13 세기가 되면서 다시 연안 항해가 발전하여 국제무역도 2개의 항로를 중심으로 번영했습니다.1개는 벨기에나 독일을 거쳐 러시아로 향하는 동쪽에의 항로와 네델란드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서쪽에의 항로이며,이러한항로를 이용하는 무역선을 노리는 해적들은, 겨울 동안은 활동하지 않고, 봄이 되면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바이킹에 있어서는 용사란 보다 멀리 가서, 보다 강한 적을 넘어뜨리고 보물을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그리하여 그들의 항해는 가까운 그린 랜드나 북미 대륙의 일부에도 도달한 것도 있었습니다. 바이킹은 프랑스의 브르누후만에서 소금을 실은 네델란드선이나 베네치아선, 혹은 대량의 와인을 쌓은 영국의 상선을 영불 해협에서 매복했으며 봄과 가을에 활동했던 이유는 해상에서 안개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스웨덴 남부 해역이나 북해에 출몰했던 해적은 전리품이 몇 안 되는 어선을 덮쳤으며, 궁핍한 도민이나 항구의 주민에게 있어서, 해적 행위는 부를 가져다 주는 은혜라 생각을 하여 근해를 항행하는 상선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13,14 세기의 영불 해협이나 대서양은, 귀족들의 무장 포경선으로 넘치고 있었습니다.그들은 밀 무역으로 돈을 벌어 동맹 관계를 존중하지 않고, 통행 허가증이나 휴전 협정을 무시했습니다. 해적들은 이 항로를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항로의 무역선을 약탈하여 포로로 잡힌 사람들에게는 보복을 못하도록 선창에서 폭력을 더해졌으며,또는 승무원의 손발을 절단 하거나 배로부터 밀어 떨어뜨리거나,식량이나 물도 주어지지 않고 작은 배에 실려서 흘러가거나 했습니다.
해상에서의 해적질이 만성화 되어 유럽 제국의 경제에 있어서 큰 장해가 되었고 이를 타게 할 목적으로 독일 북부의 도시들과 외국에 있는 독일의 상업집단이 상호교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창설한 한자동맹을 조직 하기도 하여 해적 행위에 대해 규제를 가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중세 말기에는 해적 행위를 법률의 힘에 의해서 규제하는 움직임이 퍼져 사략행위는 법률에 의해서 전쟁시의 적선에 대한 약탈인 만큼 제한으로 되었습니다. 또 프랑스나 영국이나 한자 동맹은 사략허가장을 통일해서 발행하였고 15 세기에는, 해적이 항구에 가까이 오는걸 금지하는 협정을 체결 되는등 해적 행위에 대한 제제가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나 백년전쟁과 한자 동맹 내부의 대립에 의해서, 해적을 용병으로서 고용되게 되어 해적을 규제하는 방법이 재검토되게 되었습니다. 15세기에는 전 세계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위치를 측정하는 장치가 불완전해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새로 발견한 영토에 대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교황 알렉산더 6세가 1494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각각 개척할 수 있도록 지구를 둘로 나누는 토르데시아스(Tordesillas) 조약을 맺게 했습니다.이 조약에서 브라질을 넣어 남아메리카의 동쪽을 지나는 서경 46°에서 브라질-아프리카-인도-아시아의 우리나라의 동해를 지나가는 동경 134°까지는 포르투갈 몫으로, 나머지 지역은 스페인 몫으로 정했으나.
그 조약에서 배제된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가 그 결정에 반발해, 알게 모르게 해적을 조장하기 시작했습니다.새로운 땅을 발견해 황금과 보석과 향신료를 얻기보다는 그런 것을 싣고 오는 배를 공격하는 게 더 쉬웠을 것입니다.해적들은 보물선도 공격했지만 항구도시를 습격해 악명이 아주 높았습니다.또 해적들이 새로운 섬이나 땅을 발견해 자국의 영토로 선언했고,영국,프랑스,네델란드등 서구 열강들은 식민지건설에 혈안이 되어 해적들을 양성 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해적들이 발견한 섬이 많은것이라던지 역사에 남은 유명한 발견자나 항해가에는 해적출신이 많은것을 보면 이해가 갈겁니다.해적이 많았던 시절 해적과 노예선 선원과 물개잡이 배의 선원들은 바다에서 가장 난폭한 사람들의 대명사였다고 합니다.모두 위험한 환경에서 무서운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얻어진 결과라 보여집니다.
■ 해적의 종류
해적의 종류를 나누자면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눌수 있습니다.
corsair
옛날 아프리카 북쪽 해안에 출몰한 이슬람교 국가의 약탈선의 해적.
지중해 연안에나 아니면 어떤 기간에 의해서 해적질을 한 해적으로 대부분 알려진 corsair는 북아프리카의 barbary 해안에서 부터 시작(유럽의 십자군들은 그들을 이슬람 적이라 하거나 "Barbary Corsairs"이라고 불렀습니다.)되었습니다. Corsair들에게는 기독교국의 범선들을 공격하는 권한이 주어졌기에 기독교 나라의 해상무역을 약탈하여 그들 국가에 피해를 주어 기독교 나라에서는 그들을 반기독교 세력으로 치부합니다. 기사인 St.존의 지휘아래 몰타 corsail들은 터키에 저항하며 싸웠습니다.몰타 Corsairs가 종교를 위하여 처음에 싸웠지만 잠시후에 해적행위를 해서 나온 이익이 더 크다는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후에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훈련이 잘된 해적이 되었습니다.

해적 허가증(영국왕죠지 3세가 발행한 허가증)

Privateer
전시에 정부에서 허가를 얻은 민간의 사(私)나포선, 사략선(私掠船)
Privateer는 정부에 의해서 나포 면허또는 위임장으로 다른국가의 상선을 점령하고 파괴할수있도록 정부에서 공인한 해적들입니다. Privateer가 생길수 있던 이유는 그들 정부에서 해군을 설립 하거나 또 해군유지비와 훈련등에 막대한 돈이 들어 가는것을 아끼기 위하여 개인들에게 나포면허나 위임장("Letters of Marque")을 부여 하여 정부 또는 지사에게 고용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되어 적국들의 해상무역을 약하게 하고 자신의 나라의 해상력을 기르기 위해 비교적 비용이 싼 방법으로 사용되어진 방법과 식민지의 지사와 선장, 승무원들의 급여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해적입니다. 또 그때는 국제법상에도 나포면허나 위임장을 가지고 약탈을 한 해적들에게 해적행위로 기소 할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해적으로 나선게 아니라 Queen Anne의 전쟁(1702-1713)이 끝나자 할 일을 잃어 버려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해적으로 전향하기도 했습니다. 1812년 미국의 독립전쟁 후 사락선단은 영국의 무기와 군수 물자를 운송해주는 일을 맞아 어느정도 수입을 올리며 맥을 유지했고, 1856년 파리 선언(Declaration of Paris)에 의해 사락선은 완전 폐지 되습니다.


Buccaneers
17세기 후반에 미국 연안의 스페인 식민지를 약탈한 해적
처음에는 도미니카 공화국과 지금의 하이티 등지의 섬위에서 소 그리고 돼지를을 사냥하는 사람들이였습니다. Buccaneers 라는 의미는 그들이 Arawak 인디언들로부터 바베큐 요리법을 배워 자주 그릴위에 바베큐를 해서 먹었기 때문에 프랑스어의 바베큐란 의미의 boucan이 영어로 Buccan으로 되어 Buccaneers 라고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buccaneers들은 유럽의 각종 상품들과 화약을 팔아 신대륙의 담배 교역을 하다가,스페인의 식민지 지사들이 무역을 저지하고 그들을 불신을 하고 사냥꾼들을 박해하자 그들이 달아난 노예,탈영병들,스페인을 싫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뭉쳐서 스페인에 대항을 하는 해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그들은 포루투칼의 작은 섬 곳곳에 본부를 설립했고, 훗날 활동을 위한 전진기지로 자마이카섬을 사용했습니다. 그리하여 buccaneer란 말은 곧 17세기의 서인도 제도에서 해적질을 한 모든 해적들을 묘사 하는 말로 통하여 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피해가 심각해지자 1684년 프랑스와 스페인은 Ratisbone조약을 통해 Buccaneer을 회유할려는 목적으로 Buccaneer 들에게는 식민지 각섬의 지사자격의 제안하여 많은 Buccaneer들이 지사가 되었습니다.
동앙의 해적
일본과 중국에서도 해적들이 난무 했는데 특히 일본의 해적인 왜구는 단순 해적으로만 볼 수 없었습니다.왜냐면 왜구들은 일본에서 수많은 전란을 걲으며 생존을 위한 전투를 했던 인물들이 조직적으로 구성 되어 주변국 들을 약탈 했기 때문입니다.이 해적들 때문에 중국이나 한반도는 해금령을 내려 바다 근처에는 민간인이 살지 못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현대의 해적들
공식적으로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세계해사협회)에서 1년에 발표되는 건수는 약 100여건에 달하고 있으며, 나날이 증가 추세로 international commercial service에서 나온 자료에 의하면 브라질 항구들과 소말리아 해안이 있는 대서양에서 해적행위가 증가 한다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또 같은 시간에 imb(international maritime Bureau)에서도 아시아 남동쪽에서 해적 행위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특히 자바해와 사우스 차이나 해안을 지나 항해 하는 배들은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기 때문에 싱가포르에 해적대책기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선박인 "텐유호" 와 "글로벌마스호" 가 98년 과 2000 년에 각각 해적에게 붙잡혔던 사건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해적들은 칼과 포가 아닌 박격포 슈류탄등으로 무장하고 빠르고 날렵한 보트를 이용하여 피해를 준다고 합니다. 최근에 보고 된것으로는 Somalia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서 해적들이 해안경비대인것 처럼 행동하면서 배에 올라온후에는 범법을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 하였으며,또 다른지역에서는 자동무기류를 사용하여 배를 격침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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