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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과 재미 - 바다를 떠 돌아 다니는 유령선
유령선의 시초가 된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 이라고 아십니까? 번역하면 ‘날으는 네델란드’인 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네델란드 항공사의 이름이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유럽에서는 유령선을 Flying Dutchman 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유럽의 해상 전설 속에 나오는 유령선의 이름이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이기에 유령선 하면 보통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이라고 애칭을 한답니다. 북 유럽의 해상 전설에 의하면 유령선은 어떤 원인으로 살해당한 사람의 혼백이 구제받지 못한 채 배 안에 남아서 바다 위를 영원히 항해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저주 받은 배라고 합니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이 유령선이 선원에게 보이면 재앙이 임박했음을 뜻하는 것으로 믿어졌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유령선 전설로는 17세기의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이 대표적이며, 신앙을 불신했다는 죄로 영원히 저주 받은 네덜란드 선장이 바다 위를 헤맨다는 이 전설은 원래는 희망봉과 관련된 것으로 “그 배를 만나면 위해를 입는다” 또는 “여자의 애정으로 구제를 받는다” 등의 이야기가 첨가되었다고 합니다. 보통 유령선은 다른 배와 구별 되는 점이 그 시대에는 바람으로만 움직이는 범선 뿐 이였는데 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항해를 한다거나 배의 불빛이 바다 위에 비치지 않는다든가 하는 불가사의적인 요소가 따르곤 합니다. 또 다른 유령선에 대한 전설을 보면 배 안에 있는 피투성이의 시체가 한밤중이 되면 움직이기 시작하여 돛을 펴고 소동을 피우지만, 날이 새면 원래의 시체로 돌아간다고 하였고 유령선과 스친 배는 난파하는 것으로 묘사를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슬람교의 수도승을 죽인 벌로서 자기도 살해당한 알제리의 선장은 이렇게 50년간을 밤마다 유령선을 타고 달렸는데, 신앙이 두터운 이슬람교도의 덕분으로 저주에서 풀려나고 시체는 먼지가 된다는 등 이 전형적인 유령선 전설입니다. 또한 항해하는 선박의 승무원을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홀려서 죽이는 세이렌이나 로렐라이의 마녀 등도 유령선과 같은 바다 유령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날 떠도는 유령선의 이야기를 조합해보면 유령선의 유형은 수 백년 전 미국대륙을 발견했던 스페인의 구식모델부터 제 2차 세계대전당시 침몰한 군함들과 수송선, 그리고 잠수함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가 있다고 하며 이들을 한번 목격한 사람들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다시는 배를 타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바다에 대한 공포에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호는 1641년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항을 출발하여 인도 동쪽 네델란드령 바타비아로 항해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배의 선장인 헨드릭 반데르데켄(Hendrik van der Decken)은 고집이 세어서 항해사들의 경고를 묵살하고 자신이 폭풍우 치는 희망봉을 돌아서 항해해 올 수 있으며, 이것이 신이 자신을 구원해준다는 증거라는 자만에 찬 내기를 합니다. 그리고 지구의 끝과 마주칠 때까지 항해할 것이라고 맹세를 합니다. 그러나 그의 배는 큰 태풍의 중심을 지나가다 실종이 되고 맙니다. 네델란드 정부에 의해 침몰 되었다고 발표된 더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호는 배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침몰이 되었는지 몰라 배의 잔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침몰이 되었다고 믿어진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호는 1680년부터 1942년까지 수십여척의 민간 선박 들과 군함들에 의해 목격되었습니다. 그래서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호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령선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aumlnder> (1843)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바그너의 더플라잉 더치맨 (1841년 작곡, The Flying Dutchman)에서는 신께 다시 항해 하지 않겠다던 선장이 서약을 위반하여 항해를 하였기에 신의 노여움으로 영원히 유령선을 타고 세상을 항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각색을 하여 오페라를 만들었습니다.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는 헤피 엔딩을 만들려고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호의 선장이 사랑한 한 여인에 의해 영원이 구원된다는 내용으로 각색이 되었다고 합니다.
떠도는 유명한 유령선에 대한 이야기
메리 실레스트 호 이야기

이상한 배가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 배인지도 알 수가 없었고 더구나 갑판에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 '드 그라티아'호의 선장 모어 하우스는 안개를 헤치며 다가오는 배를 망원경으로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어디선가 조난을 당한 것은 아닐까? 가서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해.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이 있거든 구조하는 것을 잊지 말고." 드 그라티아 호의 선원들은 보트를 저어 선장이 시키는 대로 이상한 배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선원들이 다가가자 그렇게 무섭게 달려오던 배가 갑자기 멈추는 것이 아닌가! 선원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감았다. 정신을 수습한 선원들은 다시 멈추어 있는 배로 다가갔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사람들이라고는 보이지가 않았다. 선장실은 누군가 와서 청소를 한 것처럼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잘 정돈이 되기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식당의 그릇이며 술병등등 모든 것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폭동이 일어났다면 분명 배 안이 난장판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보아도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컴퓨터로 모든 것이 작동이 되듯이 목적지를 향해 잘도 가고 있었다. 이것으로 끝이 났으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열흘 후에 나타났다. 그 배는 열흘 후에도 흐트러진 모습이 없이 역시 예정된 항구를 향해 여전히 항해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한편 정부 관리들은 메리 실레스트 호의 보트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는 선원들이 어디론가 갔으리라 생각을 하고 수색 작업을 폈으나 아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후 유령선에 대한 소문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해적들에게 잡혀 갔다느니, 바다 요괴들에게 잡혀 먹혔다느니, 빙산에 부딪쳤다느니, 선장이 아주 미쳐 버렸다느니 하는 소문들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신빙성이 없는 그런 추측들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가장 믿을 만한 해석이 40년 후인 1913년에 발표되었다. 그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던 아벧 포시딕이라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포시딕은 런던의 햄프스테드 학교에서 고용인으로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학교의 교장인 하워드 린포드 선생님이 이 고용인의 유언장 사본을 읽다가 그 사실을 우연하게 알고 난 뒤부터였다. 브리지스 선장과 일등 항해사는 사람이 옷을 입은 채 수영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토론을 벌이다가 말로만 싸우는 것보다는 직접 물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결론을 짓고 물로 뛰어들어갔던 것이었다. 먼저 뛰어든 사람은 브리지스 선장이었다. 배 안에 있던 모든 선원들은 때마침 지루하던 차에 아주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하며 갑판으로 모여들었다. 선원들은 선장이 뛰어드는 모습을 잘 보기 위하여 목수가 선장의 딸이 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나무 발판위로 올라갔다. 나무로 만든 발판은 선원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파손이 되어 모두 바다로 떨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때마침 상어떼가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상어들은 배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상어밥이 된 것이었다. 포시딕 역시 다른 선원들처럼 발판에 서 있었으나 간신히 부서진 발판에 매달려 상어밥을 면했다.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에 배에 매달려 있다가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해변가에 와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포시딕의 이 말을 분명하게 인정을 했다. 그러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인도 없는 배려니와 사람이 타지 않은 배가 어떻게 목적지를 향하여 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19세기 후반의 과학이라는 것이 사람이 배를 운항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였는데... 컴퓨터라는 기계가 있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현재에도 그러한 지하철이나 무인 우주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어째든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물론 현재에도 이러한 일을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사람도 없이 목적지를 향하여 항해를 했던 그 배에 관한 일은 인류가 살아있는 동안은 영원한 수수께끼가 될 지도 모른다.
유령선 빅토리아호

1899년 영국 해군의 기함 빅토리아호는 항해사의항로계산 실수로 인해 다른 군함과 충돌을 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바닷속으로 침몰하게 됩니다. 358명의 승무원이 목숨을 잃은 당시 사고는 같은 시각에 런던에서 파티를 열고 있던 빅토리아호의 조지 트라이온 함장 가족들에게는 곧장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며, 트라이온 함장의 친구들은 분명 바다에 나가 군사훈련을 하고 있어야할 함장이 파티장에 나타나 복도를 걷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후 함장이 사고로 사망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된 가족들과 친구들은 당시 파티장에서 목격된 함장은 누구였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1899년에 가라 앉은 빅토리아호는 그 후로도 계속 바다에서 목격이 되어 유명한 유령선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루이 14세때 프랑스의 자존심이라는 SOLEIL ROYALE의 선미 에서 보이는 인어상 boader의 두 지느러미 merman을 보여줍니다.
유령선 라스 트레스 마리아스호 이야기

1990년 9월 29일, 영국의 사우스웨일스지방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 윌립톤에는 칠흑같은 밤에 정체를 알수없는 대형 여객선이 소리없이 정박해 마을 사람들이 이를 조사하려는 소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름이 라스 트레스 마리아스였던 이 배를 조사하던 영국의 해양청 관리들은, 라스 트레스 마리아스라는 여객선은 1974년 스페인 앞바다에서 침몰되어 수백명의 인명을 앗아간 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고 하며, 당시 배 안에 들어간 조사단은 배 속에 아무도 없고, 식탁 위의 음식들은 방금 차린 것처럼 김이 나고있었다고 합니다. 해군에 레이다자료에 의하면 문제의 배는 영국의 사우스 웨일즈지방 앞 45km 근처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고, 1974년에 침몰된것으로 알려진 배가 나타난 이유를 밝히려던 영국의 해군은 이 사건을 미국의 정보부에 의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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